Working Abroad, Bengaluru

학부시절 어느 교수님께서 강의 시간에 "오랜 시간 하나에 집중을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느 과목을 공부하다 잘 안되면, 다른 과목을 공부해 보세요." 라는 말씀을 하셨다. '밥을 먹다가 배가 부르면 라면을 먹으면 되는거냐'며 웃고 흘려넘긴 말이었는데, 요즘 가끔 집중이 잘 안될때면 떠오르곤 한다. 밥 먹다가 배불러서 라면을 먹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환경을 바꾸면 집중력이 좋아지는 것까진 느껴본 것 같다.

Delhi Team

우리 42컴퍼니 출장 팀이 델리Delhi에 온지도 - 손가락질 당하는 녀석는 얼마전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 벌써 한달 반이 지났다. 새로운 것들에 익숙해지는 만큼,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 또한 발견하고 있다. 델리의 탁하기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공기와 느린 인터넷과 불안정한 온수 시설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렵다. 점점 더 답답해진다랄까. 모바일 리차지 업체인 수비다Suvidhaa가 우리를 유난히도 괴롭히던 어느날 - 수비다에 대한 얘기도 여기 적으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 우린 그냥 일단 떠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된 이상, 벵갈루루Bengaluru로 간다."

벵갈루루Bengaluru

혹은 뱅갈로Bangalore. 카르나타카Karnataka 주도. 인도의 실리콘밸리. IT의 도시. 더 자세한 내용은 위키피디아를 살펴보도록 하자.

Bengaluru Microsoft

IT 도시 벵갈루루에서는 Microsoft 가 인형도 판다.

42컴퍼니가 델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유는 광고 업체를 포함한 관련 비지니스 업체들이 델리에 많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인도의 실리콘밸리라는 별명답게 벵갈루루에는 IT 관련 스타트업 관련 활동이 굉장히 많다. 난 종종 이 부분에서 벵갈루루와 델리를 각각 실리콘밸리와 뉴욕에 비유하곤 하는데, 항상 서현이의 반대에 부딪힌다. 뉴욕은, 뉴욕은 아니란다.

협업 공간Coworkig Space

영세한 스타트업에게 협업 공간은 굉장히 소중하다. 스타트업 노마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우리처럼 가끔 재정비를 위해 환경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도 협업 공간은 매우 소중한 존재다. 일단 비를 피하면서 인터넷을 할 공간은 있어야 일을 하지 않겠는가.

벵갈루루에는 꽤 많은 협업 공간 업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대부분 한달 기준으로 계약하는 것이 주된 방법이지만, 일일 이용을 지원하는 곳도 있고 일일 체험을 지원해주는 곳도 있다.

BHive bhiveworkspace.com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BHive로 정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많은 후보 중에서 가장 일하는 환경이 좋아보였고, 일일 입장도 지원한다고 한다. 벵갈루루 내에 지점이 8개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보이지만 거리는 먼 HSR S-4 지점에 방문했다.

BHive

BHive는 공간도 괜찮고, 인터넷도 빠르다. 옆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전부 똑똑해 보인다. 커피도 제공되고, 하루 500루피(약 8,500원)면 가격도 나쁘지 않다. "좋아 너로 정했다!" 하고 결제를 하려는데 국제 신용 카드는 결제가 안된다고 한다. 뭐 하나 쉬운게 없다.

BHive 공용 공간에 앉아서 주변에 있는 다른 협업 공간에 전화를 돌려봤다. 전화로 "일일 입장은 가능한가요? 얼마인가요? 신용카드 결제가 되나요?" 등을 물어보고 있는데, 어떤 인도인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갑작스레 인사를 하고 질문을 던진다.

"너희는 어떤 스타트업이니?"

일단 경계의 눈길을 살짝 준 다음 - 인도인은 별 상관 없어도 워낙 말을 잘 건다 - "우리는 사용자 잠금화면에 컨텐츠를 보여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어." 라고 대충 간략하게 말해줬다. 그리고는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가려는데, 이 아저씨가 질문을 하나 더 던진다.

"사용자의 어떤 문제(Pain point)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어?"

어라, 이 아저씨 봐라? "우리는 사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에 컨텐츠를 제공하고, (광고 등의) 컨텐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의 일부를 사용자와 공유하고 있어. 사용자는 컨텐츠를 소비하면서 동시에 소비를 위한 비용을 얻을 수 있지." 라고 조금 길게 설명을 해줬다. 갑자기 영어로 하게된 1분 스피치 느낌이랄까.

1분 스피치, 5분 스피치 등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오래된 - 어쩌면 지루한 - 공식처럼 되어버렸는데, 정작 준비를 해놔도 종종 이게 그다지 중요한가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첫 인상을 제대로 줄 수 있어야 다음 이야기도 이어갈 수 있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어차피 서비스의 본질은 5분 안에 판단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탕으로 생각해봤을 땐 그렇다. 이들은 빠르게 서비스를 이해하지만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갑작스레 만난 사람과의 5분 대화에 꽂혀서 중요한 파트너가 되는 스토리는 여전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건 TV에 나오는 재벌과의 흔한 연애 드라마 같다. 일단 뺨 때리고 사랑에 빠지는 그런 느낌.

헌데 여타 목적 없이 가볍게 하는 이런 대화가 재밌을 것이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은 들었다. 어쩌면 "네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뭐야?" 라는 질문에 지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이 아저씨가 옆에 있던 사람을 부르더니, 하루 무료 입장권을 주라고 한다.

BHive Free Ticket

"해외에서 가치를 만드는게 쉽지 않지? 오늘 하루 무료로 이용해보고, 더 있고 싶으면 연락해 우리가 계좌를 열어줄게."

명함을 받으니 BHive Consultant 라고 적혀있다. 뭔가 도울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란다. 가벼운 대화에 즐거운 도움을 받으니 기분도 좋아졌다. 여러군데를 돌아보고자 했기에 BHive 에서 일한 것은 이날 하루 뿐이었지만, 좋은 공간에 멋진 사람들이 활기차게 일하고 있다는 것 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Social socialoffline.in

Social 은 벵갈루루 뿐만 아니라 델리, 뭄바이Mumbai, 구루가온Gurgaon 등 인도 전 지역에 퍼져있는 협업 공간이다. 인테리어는 업무 공간보다는 레스토랑과 바에 가깝다. 업무 공간이 따로 나눠져 있긴 하지만 동시에 옆에 있는 공간에서 레스토랑과 바를 함께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나처럼 가끔 낮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이 집중에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라면 아주 좋은 공간이지만 말이다.

Social

일일 이용은 제공하지 않는다. 일반 사용자에게 공간의 제약은 없지만, 무료 인터넷이 한 시간 까지만 제공된다. 인당 5,000루피(약 85,000원)를 내면 한달 회원이 되는데, 회원은 무제한 인터넷이 제공된다. 이 5,000루피는 가상 계좌에 채워지는데, 이 금액은 한달간 Social 에서 액면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Social 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회원권은 무료야, 다만 여기에서 먹고 마시고 일하렴. (최소한 5,000 루피 만큼이라도)"

인당 한달에 5,000루피는 우리가 이용하기엔 너무 비싼 금액이었다. 델리에 우리 사무실이 있는데 굳이 Social 에서 일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냥 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여기는 인도 아닌가? "우리 여기에 일주일만 있을껀데 어떻게 안될까?" 인도에는 안되는게 없다. 인당 1,000 루피만 충전해도 회원이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땡큐!

결과적으로는 세 명이서 총 5,000루피를 충전했다. 다른 직원이 실수로 신용카드를 5,000루피로 긁어버린 것이다. 인도에도 안되는게 있는데, 신용카드 결제 취소가 그 중 하나에 속한다. 뭐 이미 3,000 루피는 이미 이틀간의 식사 비용으로 나갔고 2,000루피는 델리에서 쓰면 되니까 괜찮다. 윙도 맛있었고, Birra 맥주도 있었으니까.

Yogi-shtaan yogisthaan.com

히피 히피 히피 히피!

Yogi-shtaan

일단 신발부터 벗고 본다. 헌데 안 벗어도 된다. 무슨 규칙이 필요하겠는가. 도심지 가운데 이렇게 자유롭고 개방적인 공간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다. 인터넷도 잘 된다. 히피도 인터넷은 한다. 협업 공간은 아니고 일반 카페지만 우리 말고도 일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들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처 흐른다.

Yogidog

커다란 강아지 마저도 히피스럽다. 눈길 한 번 안준다.

Om Made Cafe ommadecafe.com

이곳은 천국이다. 커피 세 잔 시키고 네 시간을 버팅겼다. 배가 불러서 아무 것도 못 먹었지만, 분명히 음식마저도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최소한 향기는 그랬다.

Om Made Cafe

고아Goa 지역에서 시작했다는 이 카페는 고아를 그대로 들어서 벵갈루루로 옮겨놓은 것 같다. 건물 옥상에 위치한 이 카페는 경치도 좋고 인터넷도 잘 된다.

Om Made Work

어디서나 일은 계속된다.

Working Abroad ?

인도에 온 김에 적당히 재충전도 할 겸 와본 벵갈루루지였지만,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집중하고, 굉장히 많은 일들을 이루어 냈던 것 같다.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일하는 곳이었고, 여행지였으며, 생활 공간이었다.

Cozy Cafe

일하던 곳이 지겨워지면 그냥 훌쩍 일어나서 근처 스타벅스나 귀여운 카페에 들어가면 된다.

물론 매일을 마냥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생활도 며칠이 더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고, 익숙해지는 것이 있는 만큼 익숙해질 수 없는 것들도 생길 것이다. 집중이 잘 되는 것 보다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될 것이고,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에 지쳐버릴지도 모른다.

13th Bar

일 터지면 바에서도 일 하는거다.

하지만 가끔 일주일 정도 낯선 환경에서 일해본다는 것이, 여행 하듯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 큰 의미가 된다는 것을 느낀 일주일이었다. 델리로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여행하듯 집중해서 일하고 있다. 요새들어 하루 하루가 참 길다. 좋은 일이다.

ps. 벵갈루루에는 좋은 바, 클럽들과 놀거리들도 가득하다. 이건 시간날 때 따로 적어봐야겠다.
pps. 하나 불편한 점을 꼽자면, 인도 현지 호텔 관련 서비스 OYO를 통해서 숙소를 구했는데 국제 신용카드도 안되고 서비스도 별로였다는 점? 항상을 아닐지라도 굉장히 많은 경우에 싼건 비지떡이 맞다.